들어가며
올 해 초에 SSAFY에 입과하고 벌써 일년의 절반이 흘렀다.
절반이 지난 현재의 나는 성장, 도태, 그리고 공허 세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성장
나는 성장했다, 개발자로서.
학부 때 인공지능 모델을 개발하면서 파이썬을 사용한 경험은 있었으나, 그게 전부였다. 코딩에 흥미가 있었지만 지식은 얕았다.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어서 전공도 아닌 인공지능을 공부했으나 결국 개발자가 되고자 결심하고 SSAFY에 지원했다.
전공자들 사이에서 no base로 시작하는 장점도 있었다. 모든 게 신선하고 재밌었다.
1월에 들어서는 자바와 알고리즘에 대해 배웠고 외투가 얇아질 때 즈음에는 기본적인 Database 지식과 기본적인 HTML, CSS, Javascript 등의 Frontend 관련 지식을 배웠다. 이후는 대부분 Spring을 필두로한 Backend 지식을 공부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4월 공부 기록. 1월부터 현 시점까지 SSAFY에서 매일 공부한 내용을 기록했다.
나는 자기 객관화가 강한 편이다.
쉬이 고쳐지지 않는 단점과 투쟁하기도 하고 노력하고 장점을 최대한 이용하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남들보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것 같다. 그 중 하나가 애매한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다. 교육장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의 한 시간 동안 공부한 양도 상당했다. 여차여차 결국 SSAFY 1학기를 어제 막 수료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큰 수확도 있었고, 아쉬운 부분도 있다.
가장 큰 수확은 개발자가 되고 싶었는데 어떤 분야를 어떻게 공부해야하는 지 알게 된 것이다. 노력이라는 vector를 구성하는 direction과 size중, direction에 대한 영점이 조율된 느낌이다. Full stack 교육과정 답게 많은 분야를 공부할 수 있어서 많은 framework에 익숙해지고 실무에서 어떤 식으로 일을 하게 될 지, 협업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등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넓은 분야를 다루다 보니 각각의 내용에 대해 깊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검색해가며 사용할 수만 있는 기술은 참 많아졌다. 물론 이런 아쉬움은 독하지 못했던 과거의 나에 기인하는 걸 지도.
CS 지식과 프로젝트 경험으로 인해 아직 취직의 문턱은 넘지 못했지만 SSAFY에서 공부한 덕분에 면접 경험도 꽤나 생겼다. 그리고 삼성전자 직인이 찍인 수료증, 우수 프로젝트 상장, 우수 성적 상장, 역량평가 Professional 등급 합격증 등 유형의 결과물도 생겼다.
도태
슬프게도 건강이 도태되었다. 일부 생활 습관 역시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손이 키보드 위에 있다 보니 손목의 삼각섬유연골복합체에 생긴 염증 때문에 몇 달을 고생중이다. 목이나 허리 통증은 말할 것도 없고. 중간에 피부도 뒤집히고 속도 뒤집히고 발도 다치고 하는 바람에 가장 병원을 많이 갔던 시기였던 것 같다.
생활 패턴도 바뀌었다. 등록해 둔 헬스장으로 발걸음도 뜸해지고 깨끗했던 집도 어질러 지기 일쑤였다. 살은 빠졌지만 식사를 거르면서 근육도 같이 빠지고 거울 속의 모습에 창피함을 느끼는 날도 늘었다. 내가 가장 우려하던 일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기회 중의 하나는 환경이 변화하는 시점에 찾아온다. 이사를 가거나, 집 구조를 바꾸거나, 혹은 새로운 곳으로 출퇴근하거나. 환경이 바뀌는 시점에 내가 하는 행동들은 습관으로 만들기 쉽다. 반대로 말하면, 이 때 만들어진 안 좋은 습관은 없애기도 쉽지 않다. 나는 SSAFY에 입과하며 지하철에서 공부하는 습관, 매일 저녁 운동하는 등의 습관을 만들었다. 하지만 피곤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연속된 며칠을 계기로 두 가지 습관 모두 잃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생각보다 나는 나약한 사람이다. 주변에서는 열심히 산다는 얘기를 들으면 알맹이가 빠진 인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흐린 날 날씨가 좋다는 인사치레를 듣는 것처럼.
공허
비교적 최근 이야기지만, 팬데믹이 끝나가며 사람을 만나면서 더욱 공허해졌다. 개발자로서 역량도 늘며 남들만큼 할 수 있게 되면서 치열함이 가라앉는 것도 한 몫 했다. 같이 나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도 생기고 만남 후에 다음 만남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여유가 생긴 날 밤에는 여전히 불안에 잠을 설치고 바쁠 땐 피곤에 잠들어 할 일을 못 하는 일도 생겼다. 고민도 많아졌다.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 나와 성장에 대한 고민. 미래에 대한 고민.
내가 내린 공허함의 근간에는 “나를 사랑하지 못한다”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마음은 앞서고, 꿈은 크지만 막상 그 기대를 실행에 옮기는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게 될 때 감정적이게 되고 내가 가장 경계하는 실언도 하곤 했다. 거울을 보며 긍정적인 말을 한 지도 오래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아니지만, 적어도 혼자 있을 때는 웃는 날이 줄었다.
앞으로의 계획
“함께 자라기”라는 책에서 일이 어려우면 조금은 쉽게, 쉽다면 조금 어렵게 만들어 지속성과 성장 동력을 만들어야한다는 문구가 기억이 난다. 한참 부족한 현 상태와 점점 경각심이 사라지는 생활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 많은 몇 가지 바꾸어야겠다. 또한, 외부적인 요인이 아닌 나의 내면을 살펴보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신체적 건강도 신경쓰면서.
강제로 환경을 바꾸는 것은 굉장히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몇 가지 편법이 있다. 가장 효과가 좋은 건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가구 배치를 바꾸는 등의 시각적인 변화를 주는 것이다. 새로운 습관을 만들면서.
오늘은 청소를 해야겠다.